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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나는 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그 옛날 소크라테스의 명언은 오늘까지도 유효하다.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이 되거나 자기가 누군지 아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얼마나 드문 일인가. 게다가 날이 갈수록 내가 아는 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가까운 지인들 사이에서도 밥 같이 잘 먹다가 기분이 상하기 일쑤다. 같은 일에 대해 너무 다른 견해를 갖고 서로 옳다고 우겨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눈치 보며 말없이 밥만 먹는 자리는 피곤하고 재미없다. 내 가까운 사람의 진짜 속내도 모를 판에 매스컴에서 매일 보는 정치인을 너무도 잘 아는 듯 핏대 올리며 욕하든지 역성드는 사람들을 보면, 참 순진하고도 어리석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누구를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오래된 인연의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낯선 외계인으로 느껴진 경험을 해본 적 있는 사람은 안다. 가족이나 오랜 친구가 길에서 처음 본 사람보다 더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그런데도 우리는 매 순간 누군가에 관해 그를 잘 아는 듯 생각하고 말한다. “그 사람은 내가 잘 알아”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가 그렇지 않다는 건 내가 보장해” 등등.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점점 이런 확신이 사라져가는 게 정상이다. 그게 누구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욕을 하거나 무작정 편을 들지는 말자고 생각한다. 비록 그 상대가 내 혈육이거나 자기 자신이라 할지라도.   비현실적인 과대한 자신감을 지니고 무조건 자신에게만 관대한, 자기중심적인 사람을 자기애성 성격장애, 심하면 자기애성 인격 장애라 부른다.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그런 성향의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그런지 인식 못 하는 채 그 병에 걸려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들은 대체로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성향을 지닌다. 습관적으로 모든 게 거짓말이기 일쑤이고, 수치심과 죄의식,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무조건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잘못을 뒤집어씌우기 일쑤다. 결국 자신마저 감쪽같이 속이는 병이다.   생각해보면 그런 성향의 사람들은 늘 우리 가까이 편재해 있었다. 아니다 싶으면서도 한동안 그 옆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몹시 개인적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떠올린다. 그때는 몰랐으나 절대 신뢰할 수 없는 자기애성 인격 장애 환자에게 내 허약한 영혼을 기대 본 사람은 안다. 한때 혹은 오래도록 우리가 기댔던 그 카리스마 넘치는 존재가 정작 자기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 미성숙한 존재라는 사실을 완전히 파악하기까지 꽤 오랜 세월이 걸리기도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오래전에 이렇게 예언했다. “대다수의 편에 서는 게 꼭 옳은 건 아니다. 우리는 광기 있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는 걸 삶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무릇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다. 생각 없이 무조건 믿고 따르는 건 사이비종교의 속성을 떠올리게 한다. 칼 융에 의하면 사람들이 너무 쉽게 판단하는 건 사고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저 사람보다 좋다고 생각하고, 이 자식이 저 자식보다 낫다고 생각하며 편애하고 더 잘해주고, 그렇게 생각에 속고 휘둘리며 살아왔다는 걸 너무 뒤늦게 알게 되는 우리는 늘 어리석다. 다음 생이 있다면 지혜롭게 살리라.   연구에 의하면 우리가 지닌 지혜는 모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게 다일지 모른다. 과학자들은 지구의 수명은 인간이 그렇듯 무한하지 않다고 말한다. 매 순간 죽어가는 지구인, 우리는 누군가 말하듯 “악한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악한 사람들이다. 이 사실에 지혜롭게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은 서로를 너그럽게 대하기로 합의하는 것이다.”(브리지드 딜레이니 『불안을 이기는 철학』)   하지만 인간은 계속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며 살다가 죽는 게 일반적이다. 만일 그렇지 않은 개인이, 그렇지 않은 세상이 존재한다면 인류의 전쟁은 오래전에 종식되었을 것이다.   언젠가 우리가 끝없이 되풀이해온 분노와 복수를 드디어 끝낸, 아직 태어나지 않은 지혜로운 세대를 감히 우리가 꿈꿀 수 있을까. 뿌연 거리감이 걷히고 세상 풍경이 또렷이 보이고 들리기 시작하는 또 가을이다. 문득 엉뚱한 문장 하나가 떠오른다. “내 사랑은 얼마인가요?” 내게 그것은 “내 그림은 얼마인가요?” 같은 질문으로 들린다. 모든 것에 가격을 매기는, 물질이 마음을 이긴지 오랜 세상, 오늘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 해도, 살아있다는 건 참 쓸쓸하고도 아름다워라. 황주리 / 화가삶의 향기 아무것 외계인 자기애성 성격장애 자기애성 인격 정신의학 전문가들

2023-09-29

[살며 생각하며] 작은 신의 환상

지난 칼럼에서,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에서 조명한 교주들의 과대형 망상장애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들의 이해 불가능한 과대형 망상장애의 뿌리 중 하나는 극단적인 자기애성 성격장애다. 미국의 정신건강 매뉴얼인 DSM 5에서는, 구체적으로 아래 중 5가지 이상이 해당하면 NPD(Narcissitic Personality Disorder), 즉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진단한다.     1.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과대한 느낌으로 성취와 능력을 과장, 2. 무한한 성공.권력.명석함.아름다움.이상적 사랑 등에 몰두, 3. 자신은 특별해서 특별하게 높은 지위의 사람이나 기관만이 이해하고 관련할 수 있다는 믿음, 4. 타인으로부터의 과대한 숭배 욕구, 5. 특별대우에 대한 당연한 의식, 6.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는 욕구, 7. 감정이입의 결여, 8. 타인에 대한 분노 혹은 타인이 자신에 대해 분노한다는 생각, 9. 오만하고 건방진 행동과 태도.   앗, 나도 약간 자기애적 성격장애? 특히, 1번 증상? 연초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출간된 후, 너무 좋았다는, 도움이 되었다는, 눈물을 흘렸다는 말과 ‘독자’들의 이메일을 받을 때, 나도 모르게, 흠, 내가 참 괜찮은 일을 했구먼 하면서 자기애의 극치를 달릴 뻔했다. 아직도 초판이 다 소진되지 않은 이 엄연한 현실이, 그나마 내 나르시시즘을 깨워주니천만다행이다.   사실 어느 정도의 나르시시즘은, 인간 발달 단계에서 경험해야 할 건강한 과정의 하나이다. 특히 태어나서 약 6개월 전까지는, 아기들은 자신과 부모와 온 세상이 다 하나이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세상이 움직여준다고 믿는다. 배고프면 달려와 젖을 먹여주고, 척척하면 기저귀를 갈아주고, 졸리면 잠을 재워주는 부모나 다른 초기 양육자들의 사랑과 돌봄 덕분이다. 얘들은 그저 울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다. 정신분석학 대상관계 이론에서는, 그래서 이 시기에 아기들이 자신을 little god이라고 여기게 된다고 한다.     아들 집에 손주가 셋인데, 위의 두 아이는 다섯 살, 세 살 반이라 리틀갓에서 졸업한 지 좀 된다. 아직 투정은 하면서도 현실을 인식해가는 중이다. 그런데 이제 6개월 채 안 된 막내는 여전히 little god이다. 온 가족이 이 귀여운 리틀갓이 언제 울까만 기다리다, 우는 소리 나면 바로 서로 데리러 가려고 싸우니 말이다. 하지만 이 전능 환상이 서서히 깨어지며 미운 두살(terrible two)을 거쳐 3살쯤 되면, 이 아이도 온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세상에 적응해나가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이 결핍될 경우이다. 아기일 때 잠시라도 자신이 신 같은 존재였다는 것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 중, 성인이 되어서도 이 전능 환상을 추구하면서 자기애성 성격 장애인들이 나오기 쉽기 때문이다.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와 우울증에 걸린 엄마에게서 따뜻한 양육을 받지 못하고 자라 이 상처가 반사회적 성격과 사이코패스 성향으로 발전한 히틀러, 자아도취에 빠져 죄책감 없이 신도들을 지배하며 자신의 기분과 욕망에만 충실히 하는교주 같은 사람들이 그 예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나르시시즘의 스펙트럼 안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건강한 자기애는 좋은 것이다. 자존감, 자신감을 안겨주는 긍정의 에너지다. 하지만 그 반대로 절제되지 않은 과도한 자기애는 자신과 주위를 파괴할 뿐이다. 작은 신의 환상은 깨어져야만 한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환상 자기애성 성격장애 자기애적 성격장애 전능 환상

2023-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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